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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야시 요시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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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바야시 요시노리는 일본의 만화가이자 평론가이다. 1953년 후쿠오카현에서 태어나, 《도쿄 대학 일직선》으로 데뷔했으며, 《오보챠마 쿤》, 《고마니즘 선언》 등 다양한 만화 작품을 발표했다. 그는 보수주의적 성향을 보이며, 대동아 전쟁 긍정론과 반미주의를 주장하며, 넷 우익을 비판하는 등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왔다. 그의 작품과 발언은 여러 차례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역사 인식과 관련된 문제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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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야시 요시노리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고바야시 요시노리
본명고바야시 젠한
출생일1953년 8월 31일
출생지후쿠오카, 일본
직업만화가
활동
활동 기간1976년 - 현재
장르개그 만화
풍자 만화
시사 만화
주요 작품
대표작『동대일직선』
『오봇챠마군』
『고마니즘 선언』
『신 고마니즘 선언 SPECIAL 전쟁론』
수상
수상 내역제34회 쇼가쿠칸 만화상 (『오봇챠마군』)
소속
단체고센 도장
대동아 청년숙
웹사이트
공식 웹사이트고바야시 요시노리 공식 웹사이트

2. 생애

후쿠오카 대학 프랑스 문학과를 졸업한 고바야시는 대학교 재학 중이던 1976년 주간 소년 점프에 첫 만화 ''도다이 이쵸쿠센''(東大一直線, 도쿄 대학으로 직행)을 발표하며 만화가로 데뷔했다. 초기 작품 중 하나인 おぼっちゃまくん|오보챠마군|일본어은 일본 버블 경제 시기 부잣집 아들의 버릇없는 행동을 풍자한 작품으로, 1989년 쇼가쿠칸 만화상 아동 만화 부문을 수상했다.[1]

고바야시는 오움진리교를 풍자하면서 이 종교 집단의 암살 명단에 올랐고, 1993년에는 암살 시도를 당하기도 했다.[2]

2. 1. 가계 및 가족

고바야시 요시노리는 1953년에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에 있는 외가의 불교 사원에서 두 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72] 그의 조상은 막말도사 근왕당의 반란 진압에 가담했던 고바야시 덴시치(小林 伝七일본어)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7년에 태어나[73] 2006년 1월에 사망한 고바야시 요시노리의 아버지는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5년에 일본군에 징집되었는데, 원래는 오키나와 전투가 벌어지고 있던 오키나와현으로 파견될 예정이었으나 시기가 늦어져 미야자키현에서 본토 결전을 준비했다고 한다.[74] 또한 노동 조합에 가입하여 태평양 전쟁 이후에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되기도 했다.[72]

고바야시 요시노리는 자신의 책에서 "어머니는 태평양 전쟁 종전 당시에 12세였다."라고 썼는데, 이를 통해 그의 어머니는 1932년 8월 15일에서 1933년 8월 15일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73] 고바야시 요시노리의 어머니는 진언종 사원의 딸이었고,[72] 외증조부는 메이지 시대청일 전쟁, 러일 전쟁에 참전한 근위병이었다.[75] 이 때문에 이상주의적인 공산주의 사상을 지지했던 아버지와 현실주의적인 불교 사상을 지지했던 어머니 사이에 사상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고바야시 요시노리는 1950년대 이후에 태어난 시라케 세대이지만, 1990년대에 있었던 《고마니즘 선언 차별론 스페셜》의 소재가 된 부라쿠민 차별 문제를 후쿠오카현의 지역 사회에서 목격하고 성장했다. 고바야시 요시노리는 전후 쇼와 시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던 좌익 진영에 의한 전전 시대에 활동했던 일본 제국의 조상, 국방, 애국심에 대한 비판을 목격하면서 성장했고 평소부터 비정상적인 감각에 위화감을 가졌다.

만화 내용에서 "30대가 되어 사랑하는 사람이 수술실에 들어갔다", "아내가 부인과 질환으로 아이를 출산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바야시에게는 자녀가 없다. 또한, 고바야시의 아내는 고바야시의 다른 여성과의 교류에 관대하다.[14] 단, 자녀가 없는 이유로는 아내의 불임 외에 금전적인 사정도 있다.[15]

2. 2. 유년 시절

고바야시 요시노리는 어린 시절부터 만화에 관심을 가졌다. 만화가가 되기 위해 수험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후쿠오카 시립 후쿠쇼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이 학교는 현지 장사꾼의 자녀들이 다니는 곳으로 주판 계산, 부기, 세무 회계 수업이 있었다.[76] 고바야시는 이 학교를 선택한 이유로 "집에서 가깝고", "한가해서 만화를 그릴 수 있으며", "여학생 비율이 높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없어 조금만 공부해도 우등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고바야시는 도쿄도로 가서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제자가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담임 교사의 권유로 후쿠오카 대학 인문학부 프랑스어학과에 입학하게 된다.[76] 고바야시가 프랑스어를 전공하게 된 계기는 "당시 일본에서 프랑스 팝 음악이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셸 폴나레프의 노래를 프랑스어로 부르면 멋있고 여자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고바야시는 어린 시절부터 천식을 앓았고, 매우 마른 체형이었다. 그의 별명은 "콩나물", "해골", 황금박쥐였다. 부모는 고바야시 전용의 별채를 만들어주었는데, 이는 자립심을 기르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당시 아버지가 자주 이웃 주민들과 마작을 하면서 소음으로 인해 고바야시가 격분하여 별채가 생겼다는 것이다.

여름방학 등 장기 방학에는 지방에서 밀교 사찰의 주지를 맡고 있는 조부 시노하라 류쇼의 절에 맡겨졌다. 조부는 태평양 전쟁뉴기니섬에 파병되었을 때, 배우 가토 다이스케와 함께 현지에서 장병들을 위한 위문 공연을 했고, 이것이 후에 『남쪽 섬에 눈이 내린다』로 영화화된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고바야시는 이 절에서의 경험이 이후 '고센'을 중심으로 한 여러 곳에 영향을 주었고, 자신을 "不動明王의 환생"이라고 칭했다.

고바야시는 어린 시절 부모의 방침 때문에 물건을 거의 사주지 않아 물욕에 대한 집착심이 약해졌다고 한다. 초등학교 중반 무렵에는 반장을 맡았지만, 담임 남성 교사는 스파르타 교육을 하는 사람이었다. 고바야시는 이 담임으로부터 학급 행사 진행을 엄격하게 배웠다.

지적 장애 기미가 있고 코가 큰 반 친구가 있었는데, 소풍 도시락 시간에 함께 해줄 친구가 없을 때는 그와 함께 웃으며 지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닌자 부대 겟코", "스타 트렉" 등을 시청했고, 어린 시절 동경했던 인물은 "우주 가족 로빈슨"의 닥터 스미스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64년, 베트남 전쟁이 발발했고, 고바야시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신문 아카하타 기사를 스크랩북으로 만들어 여름방학 숙제로 제출했다. 이 전쟁은 미국침략 전쟁이라고 비판했다. 이 숙제는 학교 자유 연구 콩쿠르에서 가작으로 선정되어 전시되었지만, 반공주의자였던 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었다.[16]

중학생 때, 반 친구 3명과 함께 수제 만화 잡지 "키마구레"를 제작했다.

2. 3. 학창 시절 및 데뷔 전

어린 시절부터 만화에 관심을 가졌던 고바야시 요시노리는 만화가가 되기 위해 수험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학교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하여 후쿠오카 시립 후쿠오카 상업고등학교(현재의 후쿠오카시립 후쿠쇼 고등학교)에 입학했다.[76] 주판 계산, 부기, 세무 회계 수업이 있는 현지 장사꾼의 자녀들이 재학하던 고등학교였다. 고바야시 요시노리는 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한 이유에 대해 "집에서 가깝다.", "한가로워서 만화를 그릴 수 있다.", "학교의 3분의 2는 여자다.", "공부할 녀석이 없기 때문에 조금만 공부하면 우등생이다."라고 밝혔다.[76]

고등학교 졸업 후 고바야시 요시노리는 도쿄도로 가서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제자가 되어 만화가가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담임 교사가 그에게 대학교에 가서 책을 읽으라고 권하면서 후쿠오카 대학 인문학부 프랑스어학과에 입학하게 된다.[76] 그는 수험 공부 준비에 착수한 것이 나중에 《도쿄 대학 일직선》을 그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또한 프랑스어를 전공하게 된 계기는 "당시 일본에서 프랑스의 팝 음악이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셸 폴나레프의 노래를 프랑스어로 부르면 멋있고 여자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의 만화 작품에서는 프랑스어에서 유래된 명칭, 어구가 다수 등장한다.

후쿠오카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고바야시는 1976년에 주간 소년 점프(''週刊少年ジャンプ'', ''Weekly Shōnen Jump'')에 첫 만화인 ''도다이 이쵸쿠센''(東大一直線, 도쿄대로 직행)을 발표했다.

2. 4. 만화가 데뷔 및 활동

고바야시 요시노리는 1976년 《주간 소년 점프》에 만화 《도쿄대 일직선》(東大一直線일본어)을 연재하며 데뷔했고, 1980년부터 1981년까지 《주간 영 점프》에 후속편인 《도쿄 대학 쾌진격》(東大快進撃일본어)을 연재했다. 데뷔 당시부터 후쿠오카에서 집필 활동을 하다가[77] 1982년에 도쿄로 이주하여 시나노마치에 거주했다.[20]

데즈카 오사무의 스타 시스템을 일시적으로 사용했고, 1983년에는 《주간 영 점프》에 만화 《겁쟁이 호사쿠전》(布抜呆作伝일본어)을 게재했다.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주간 소년 챔피언》에 만화 《이로하니 호사쿠》(いろはにほう作일본어)를 연재하여 단행본 전 9권을 완성, 《도쿄대 일직선》에 이은 기록을 남겼다.

1986년 5월부터 1994년 9월까지 《월간 코로코로 코믹》에 만화 《왕괴짜 돈만이》(おぼっちゃまくん일본어)를 연재했는데, 이 작품은 일본 버블 경제 전성기의 버릇없는 부잣집 아들을 풍자한 작품으로 1989년 쇼가쿠칸 만화상 아동 만화 부문을 수상했다.[1] TV 아사히 계열에서 애니메이션화되어 인기 프로그램이 되었다. 그 외에 1992년부터 1993년까지 《월간 코로코믹 코믹》에 만화 《시골왕 초사쿠》(이나카오우 쵸우사쿠일본어)를 연재했다.

1989년 제34회 쇼가쿠칸 만화상 수상식에서 심사위원으로부터 비판적인 발언을 듣자, "'''이렇게 저속한 만화에 상을 준 심사위원의 배짱에 감사합니다'''"라는 풍자 섞인 코멘트로 반격했고, 이듬해 이후 심사위원이 교체되는 사태로까지 발전했다.[21]

3. 사상 및 정치적 입장

고바야시 요시노리는 1992년 후소샤의 《SPA!》에 만화 《고마니즘 선언》을 연재하면서 이전까지의 작품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은 사회 문제와 정치 문제를 다루었으며, 겐토샤, 쇼가쿠칸에서 출판되었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는 보수 성향 계간지 《와시즘》의 책임 편집장으로 활동했고, 2006년에는 《빅 코믹》에 만화 《늦게 핀 할아버지》를 연재했다.

종종 "넷 우익의 산파"라고 지적받지만, 정작 본인은 넷 우익을 무시하며 강하게 비판했다.[86] 후지TV 항의 데모에 대해서도 비난했으며,[86] 2012년 아사히 신문에서는 아베 신조 총리와 넷 우익의 공생 관계를 지적했다.[87]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 긴급 행동(SEALDs)에 대해 호감을 표하며 오쿠다 아키와 회담을 가졌지만,[88] 비판적인 발언도 했다.[89] 모기 겐이치로와의 대담에서는 SEALDs에게 더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90]

일본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들의 사재기를 환영하는 자세에 대해 비판했다.[91]

스기타 미오LGBT(성소수자)에 대해 "생산성이 없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비판했다.[92] LGBT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93]

1930년대 말기와 태평양 전쟁 시기에 국민학교에 재학하며 군국주의 교육을 받았던 세대를 "소국민 세대"(少國民 世代)라고 부른다.[94]

사카모토 쓰쓰미 변호사 일가족 살해 사건에 대한 나카자와 신이치의 발언을 거짓말이라고 비판했다.[96]

야마오 시오리를 지지하며, 그녀가 민진당을 탈당한 후 민진당을 비판했다.[99]

3. 1. 기본 입장

고바야시 요시노리는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말하며,[79] 대동아 전쟁(태평양 전쟁) 긍정론과 반미주의를 명확히 내세웠다. 또한 "대동아 전쟁은 자위 전쟁이며 일본은 아시아 국가에서 최초로 백인에 의한 식민지 체제에 전면적으로 싸움을 건 것"이라는 자신의 견해를 표명했다.[78][79]

자신의 정치적 관점에 대해 "나는 공(公)을 지키는 것이지 권력은 지키지 않는다. 권력을 지키는 것은 촌스러운 일이다. 나는 자유민주당이 정권을 잡든 야당이 정권을 잡든 공에서 어긋난다면 비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베 신조 정권에 대해서는 현재의 체제는 전후 체제임을 지적하면서 "아베 신조 총리가 전후 체제로부터 벗어난다면 권력과 공이 겹치므로 지지해도 좋지만 실제로는 전후 체제의 보강이 아닐까 하고 판단한다. 전후 체제는 '공'이 아니라 '체제' 자체가 아닌가?"라고 비판했다.[80]

일본의 황위 계승 문제에 대해서는 여계 천황을 인정하고 남계 유지론자를 비판하면서 일본의 구황족의 황적 취득론에 반대했다. 남계 유지론자·지지자에 대해서는 '남계 절대주의자', '남계 고집주의자'라고 묘사하면서 "황실론 전문가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친미 보수에 대해 "친미주의자의 개"라고 조롱했다.[81]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국 의회 연설에 대해서는 "나는 미국에 아첨한 자학사관에 화가 났다. 나는 미국의 개로 전락한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더라도 영령을 우롱하는 행동이라고 분노할 수 밖에 없다."고 발언했다.[82]

일본국 헌법 제9조에 대해서는 100% 믿지 않지만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안보법제는 100% 위헌이라고 하며, 미일 안전 보장 조약(일본과 미국 간의 상호 협력 및 안전 보장 조약)을 강화하는 평화안전법제는 '종미법안'(미국에 종속시키는 법안)이라는 관점에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83][84] 평화안전법제(안보법제) 호칭에 대해서는 "'전쟁법안'은 낙인 찍기라고 하지만 입에 발린 말로도 평화안전법제라고 부를 수 없다. 일본이 동맹국의 전쟁 후방 지원을 통해 무기, 탄약, 인력을 공급하는 병참 역할을 한다면 완전히 전쟁법안이다. 야당은 당당하게 '전쟁법안'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해야 한다."고 밝혔다.[85]

과거에 일본 영주권을 보유한 외국인의 지방 참정권 부여에 찬성했었다.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 도입과 관련하여 저출산 대책에 관한 측면에서 "사실혼이야말로 일본의 전통이다."라면서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97] 반면 "일본 최고재판소가 부부동성은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나는 이러한 헌법 판단에 별로 이의가 없다. 결혼 이전의 "성씨"(姓氏)가 편하면 통칭을 사용하면 된다."라고 밝혔다.[98]

3. 2. 주요 사안별 입장

고바야시 요시노리는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말하며,[79] 태평양 전쟁을 긍정하고 반미주의를 내세웠다. 그는 "대동아 전쟁은 자위 전쟁이며 일본은 아시아 국가에서 최초로 백인에 의한 식민지 체제에 전면적으로 싸움을 건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78][79]

자신의 정치적 관점에 대해 "나는 공(公)을 지키는 것이지 권력은 지키지 않는다. 권력을 지키는 것은 촌스러운 일이다. 나는 자유민주당이 정권을 잡든 야당이 정권을 잡든 공에서 어긋난다면 비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베 신조 정권에 대해서는 "아베 신조 총리가 전후 체제로부터 벗어난다면 권력과 공이 겹치므로 지지해도 좋지만 실제로는 전후 체제의 보강이 아닐까하고 판단한다. 전후 체제는 '공'이 아니라 '체제' 자체가 아닌가?"라고 비판했다.[80]

일본의 황위 계승 문제에 대해서는 여계 천황을 허용하고 남계 유지론자를 비판하면서 일본의 구황족의 황적 취득론에 반대했다. 남계 유지론자·지지자에 대해서는 '남계 절대주의자', '남계 고집주의자'라고 묘사하면서 "황실론 전문가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미국에 대한 종속적인 사상, 친미 보수에 대해 "친미주의자의 개"라고 비난했다.[81]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국 의회 연설에 대해서는 "나는 미국에 아첨한 자학사관에 화가 났다. 나는 미국의 개로 전락한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더라도 영령을 우롱하는 행동이라고 분노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82]

일본국 헌법 제9조에 대해서는 100% 믿지 않지만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안보법제는 100% 위헌이라고 했다. 일본과 미국 간의 상호 협력 및 안전 보장 조약을 강화하는 평화안전법제는 '종미법안'(미국에 종속시키는 법안)이라는 관점에서 반대했다.[83][84] 평화안전법제(안보법제)를 '전쟁법안'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85]

넷 우익을 무시하며 "넷 우익은 '전쟁론'의 부작용이다. 이웃 나라의 욕설을 통해 자아를 비대하고 거대하게 만든 일본인들에게는 미의식의 조각도 없다."라고 비판했다. 후지TV 항의 데모에 대해서도 비난했다.[86] 아사히 신문에서 아베 신조 총리와 넷 우익은 공생 관계에 있다고 지적했다.[87]

특정 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에 항의한 학생 단체 SEALDs에 대해 호감을 표하며 오쿠다 아키와 회담을 가졌지만,[88] 비판적인 발언도 했다.[89] 모기 겐이치로와의 대담에서는 SEALDs에게 더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90]

과거 일본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의 지방 참정권 부여에 찬성했었다.

일본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들의 사재기를 환영하는 자세에 대해 비판했다.[91]

스기타 미오LGBT(성소수자)에 대해 "생산성이 없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비판했다.[92] LGBT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93]

1930년대 말기와 태평양 전쟁 시기에 국민학교에 재학하며 군국주의 교육을 받았던 세대를 "소국민 세대"(少國民 世代)라고 부른다.[94]

영혼, 초능력, UFO(미확인비행체)와 같은 오컬트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95]

북오프가 신간 도서 판매량과 제작자의 보수를 줄인다며 비판하고, 재판매 제도와 위탁 제도를 옹호했다.

사카모토 쓰쓰미 변호사 일가족 살해 사건에 대한 나카자와 신이치의 발언을 거짓말이라고 비판했다.[96]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 도입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지만,[97] 일본 최고재판소의 부부동성 합헌 판결에는 이의가 없다고 했다.[98]

야마오 시오리를 지지하며, 그녀가 민진당을 탈당한 후 민진당을 비판했다.[99]

3. 3. 오컬트 및 기타


  • 고바야시 요시노리는 영혼, 초능력, 미확인 비행체(UFO)와 같은 오컬트에 대해 "자신의 눈으로 본 것 밖에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으며,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하기 보다는 과학을 사용해서 이론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해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95]
  • 특히 오컬트 연구가로 유명해진 츠노다 지로에 대해서는 "본업인 만화가 전혀 팔리지 않게 되었으니까 지금 하고 있는 오컬트는 거의 개그밖에 되지 않는다."고 강하게 공격했고, 오컬트를 풍자한 《우시로의 나카오카군》(うしろの中岡くん|우시로노 나카오카군일본어, 츠노다 지로의 만화 작품 《우시로의 햐쿠타로》(うしろの百太郎|우시로노 햐쿠타로일본어)와 일본의 심령 사진 감정가인 나카오카 도시야(中岡俊哉)의 합성어)을 발표했다.
  • 이러한 반오컬트 사상 때문에 과거에는 일본의 물리학자인 오쓰키 요시히코(大槻義彦) 교수의 팬이라고 밝혔지만,[95] 나중에 "오쓰키 교수도 회답을 내지 않은 것이 결점이다."라고 말했다.
  • 《고마니즘 선언》에서 자신이 밀교 사원에 머물렀을 때 영적인 체험을 했다고 언급했다.

4. 논란 및 비판

고바야시 요시노리는 여러 사회 현상에 대해 논란이 될 만한 발언과 비판을 해왔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오컬트: 영혼, 초능력, 미확인비행체(UFO) 등 오컬트 현상에 대해 "자신의 눈으로 본 것 밖에 믿을 수 없다"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하기 보다는 과학을 사용해서 이론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해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때 오쓰키 요시히코의 팬이라고 밝혔지만,[95] "오쓰키 교수도 회답을 내지 않은 것이 결점이다."라고 말했다.
  • 북오프 비판: 《고마니즘 선언 시바라쿠 1》에서 북오프가 일본 만화 산업 시스템을 파괴한다고 비판했다.
  • 나카자와 신이치 비판: 나카자와 신이치와 강연 도중 사카모토 쓰쓰미 변호사 일가족 살해 사건에 대해 창가학회를 비롯한 종교 단체 조사 결과 옴진리교 소행이 아니라고 발언한 나카자와에게 "거짓말이 확실하다"고 말했다.[96]
  • 선택적 부부 별성 제도: "사실혼이야말로 일본의 전통"이라며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97] "결혼 이전의 성씨가 편하면 통칭을 사용하면 된다"고도 말했다.[98]
  • 야마오 시오리 지지: '야마오 시오리를 총리로 하는 모임' 대표를 자처했다. 야마오 시오리가 불륜 의혹으로 민진당을 탈당한 후, 민진당을 비판하고 야마오의 탈당 기자 회견을 높이 평가했다.[99]
  • 소국민 세대: 1930년대 말기와 태평양 전쟁 시기에 국민학교에 재학하며 군국주의 교육을 받았던 세대를 "소국민 세대"라고 부른다.[94]

4. 1. 역사 인식 관련

고바야시 요시노리는 스스로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며[79] 대동아 전쟁(태평양 전쟁) 긍정론과 반미주의를 명확히 내세웠다. 그는 "대동아 전쟁은 자위 전쟁이며 일본은 아시아 국가에서 최초로 백인에 의한 식민지 체제에 전면적으로 맞서 싸운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78][79]

자신의 정치적 관점에 대해 "나는 '공(公)'을 지키는 것이지 권력은 지키지 않는다. 권력을 지키는 것은 촌스러운 일이다. 나는 자유민주당이 정권을 잡든 야당이 정권을 잡든 공에서 어긋난다면 비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베 신조 정권에 대해서는 현재 체제가 전후 체제임을 지적하며 "아베 신조 총리가 전후 체제로부터 벗어난다면 권력과 공이 겹치므로 지지해도 좋지만 실제로는 전후 체제의 보강이 아닐까 하고 판단한다. 전후 체제는 '공'이 아니라 '체제' 자체가 아닌가?"라고 비판했다.[80]

일본의 황위 계승 문제에 대해서는 여계 천황을 용인하고 남계 유지론자를 비판하면서 일본의 구황족의 황적 취득론에 반대했다. 남계 유지론자·지지자에 대해서는 '남계 절대주의자', '남계 고집주의자'라고 묘사하면서 "황실론 전문가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대미 종속 사상, 친미 보수에 대해 "친미주의자의 개"라고 조롱했다.[81]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국 의회 연설에 대해서는 "나는 미국에 아첨한 자학사관에 화가 났다. 나는 미국의 개로 전락한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더라도 영령을 우롱하는 행동이라고 분노할 수 밖에 없다."고 발언했다.[82]

일본국 헌법 제9조에 대해서는 100% 믿지 않지만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안보법제는 100% 헌법 위반이라고 했다. 헌법주의는 지켜져야 한다고 말하며, 일본과 미국 간의 상호 협력 및 안전 보장 조약을 강화하는 평화안전법제는 '종미법안'(미국에 종속시키는 법안)이라는 관점에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83][84]

평화안전법제(안보법제) 호칭에 대해 "'전쟁법안'은 낙인 찍기라고 하지만 입에 발린 말로도 평화안전법제라고 부를 수 없다. 일본이 동맹국의 전쟁 후방 지원을 통해 무기, 탄약, 인력을 공급하는 병참 역할을 한다면 완전히 전쟁법안이다. 야당은 당당하게 '전쟁법안'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해야 한다."고 밝혔다.[85]

1996년 8월, 『SAPIO』 연재의 「신・고마니즘 선언」에서, 종군위안부의 증언과 미디어의 보도 내용에 의문을 제기했다[41]. 같은 해 12월 2일, 후지오카 노부카쓰, 니시오 간지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약칭: 만드는 모임)의 결성 기자회견이 열렸다. 니시오는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7개사의 중학교 교과서는, 증거 불충분한 채로 종군위안부의 강제 연행설을 일제히 채택했다. 안일한 자기 악역 사관에 도달한 하나의 귀결이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문에는 후지오카, 니시오, 고바야시, 사카모토 다카오, 다카하시 시로, 후카다 유스케, 야마모토 나쓰히코, 아카와 사와코, 하야시 마리코의 총 9명이 호소인으로 이름을 올렸다[42][43][44]. 1월 21일, 고바야시 등 「만드는 모임」멤버 7명은 고스기 다카시 문부대신을 면회하여, 교과서의 위안부 관련 기술은 검정 기준에 위반하고 있다며 삭제를 요구했다[45].

넷 우익에 대해서는, "넷 우익의 산파"라고 불리지만, 실제로는 넷 우익을 무시하고 강하게 비판했다. "넷 우익은 '전쟁론'의 부작용이다", "이웃 나라의 험담으로 자아를 비대하게 하고 거만해진 일본인은 미의식의 조각도 없다"고 비판했다.[46] 후지TV 항의 시위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47] 아사히 신문에서는 아베 신조 총리와 넷 우익의 공생 관계를 지적하기도 했다.[48]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 긴급 행동(SEALDs)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호감을 표하며 오쿠다 아이키와 회담을 가지기도 했지만,[49][50] 이후에는 비판적인 입장으로 선회했다.[51] 모기 겐이치로와의 대담에서는 SEALDs 구성원들이 일본과 미국 간의 상호 협력 및 안전 보장 조약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52]

과거에는 일본 영주권을 보유한 외국인의 지방 참정권 부여에 찬성했었다.

일본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들의 사재기(바쿠가이)를 환영하는 자세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53]

스기타 미유키의 LGBT(성소수자)에 대한 "생산성이 없다."는 발언에 대해서는, 아베 신조 총리도 생산성이 없는 것이라며 비판했다.[54] LGBT에 대해서는 차별이나 편견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55]

통일교회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아리타 요시오와의 공저 「통일교회 문제의 어둠」에서 기시 노부스케아베 신타로아베 신조 3대에 걸친 정계와의 관계를 지적하고 있다[35].

공모죄에 대해서는, 중의원법무위원회에 민진당의 추천을 받아 참고인으로 출석하여, 「공모죄의 매우 위험한 부분은, 말하는 시민이 위축되어 버려, 민주주의가 건전하게 성립되지 않을까」라고 법제화에 우려를 표명했다[65][66].

일본 국내의 코로나의 유행을 제1의 권력으로 한 매스미디어가 불안을 부추긴 것에 의한 인포데믹이라고 하고 있다[68]. 또한, 코로나 시대의 긴급사태 선언 발령을 헌법 위반이라고 하고 있다[69].

4. 2. 기타 논란


  • 고바야시 요시노리는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칭하며,[79] 태평양 전쟁을 긍정하고 반미주의를 내세웠다. 그는 "대동아 전쟁은 자위 전쟁이며 일본은 아시아 국가에서 최초로 백인에 의한 식민지 체제에 전면적으로 싸움을 걸었다"는 견해를 밝혔다.[78][79]
  • 고바야시는 자신의 정치적 관점에 대해 "나는 공(公)을 지키는 것이지 권력은 지키지 않는다. 권력을 지키는 것은 촌스러운 일이다. 나는 자유민주당이 정권을 잡든 야당이 정권을 잡든 공에서 어긋난다면 비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베 신조 정권에 대해서는 "아베 신조 총리가 전후 체제로부터 벗어난다면 권력과 공이 겹치므로 지지해도 좋지만 실제로는 전후 체제의 보강이 아닌가?"라고 비판했다.[80]
  • 고바야시는 일본의 황위 계승 문제에 대해 여계 천황을 용인하고 남계 유지론자를 '남계 절대주의자', '남계 고집주의자' 등으로 묘사하며 비판했다. 일본의 구황족의 황적 취득론에 반대하며, 남계론자들을 "황실론 전문가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 고바야시는 대미 종속 사상, 친미 보수에 대해 "친미주의자의 개"라고 조롱했다.[81]
  •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국 의회 연설에 대해 "나는 미국에 아첨한 자학사관에 화가 났다. 나는 미국의 개로 전락한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더라도 영령을 우롱하는 행동이라고 분노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82]
  • 고바야시는 개헌론자이면서도 "일본국 헌법 제9조에 대해서는 100% 믿지 않지만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안보법제는 100% 위헌이다. 입헌주의는 지켜져야 한다."라고 밝혔다. 일본과 미국 간의 상호 협력 및 안전 보장 조약을 강화하는 평화안전법제는 '종미법안'(미국에 종속시키는 법안)이라는 관점에서 반대했다.[83][84]
  • 평화안전법제(안보법제) 호칭에 대해 "'전쟁법안'은 낙인 찍기라고 하지만 입에 발린 말로도 평화안전법제라고 부를 수 없다. 일본이 동맹국의 전쟁 후방 지원을 통해 무기, 탄약, 인력을 공급하는 병참 역할을 한다면 완전히 전쟁법안이다. 야당은 당당하게 '전쟁법안'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해야 한다."고 밝혔다.[85]
  • 고바야시는 "넷 우익의 산파"라고 지적받지만, 정작 넷 우익을 무시하며 "넷 우익은 '전쟁론'의 부작용이다. 이웃 나라의 욕설을 통해 자아를 비대하고 거대하게 만든 일본인들에게는 미의식의 조각도 없다."라고 비판했다. 후지TV 항의 시위에 대해서는 "넷 우익은 자신들이 강경한 발언을 하면 '보수', '애국자'라고 생각한다. 너희들은 연간 수입이 200만 엔 이하의 하층민이라는데 그러면 되는 건가?"라고 비난했다.[86] 2012년 12월 27일 아사히 신문에서 자신의 작품인 《왕괴짜 돈만이》를 사용한 아베 신조 총리에 대한 풍자 삽화와 함께 "아베 신조 총리와 이른바 '넷 우익'은 공생 관계에 있다."고 지적했다.[87]
  • 고바야시는 일본 학생들이 아베 신조 내각의 특정 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에 항의하기 위해 조직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 긴급 행동(SEALDs)에 대해 "실즈라고 하는 젊은이에게 호감"이라고 블로그에 게재하며 오쿠다 아키와 회담을 가졌지만,[88] "멋진 데모? 민주주의란 뭐냐? 빌어먹을 놈이다!"라고 비판했다.[89] 모기 겐이치로와의 대담에서는 "9조 수호라고 말하는 순간 미일 안전 보장 조약 찬성과 같은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아무래도 모순이 발생하고 만다. SEALDs에 있는 아이들은 그런 것을 더 공부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90]
  • 고바야시는 과거에 일본 영주권을 보유한 외국인의 지방 참정권 부여에 찬성했었다.
  • 고바야시는 일본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들의 바쿠가이를 환영하는 자세에 대해 "외국인 관광객이 오는 것이 뭐가 그렇게 좋은 것일까? 특히 중국인은 눈에 거슬린다."고 비판했다.[91]
  • 고바야시는 스기타 미오LGBT(성소수자)에 대해 "생산성이 없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아이를 낳지 않아서 생산성이 없다면 아베 신조 총리도 생산성이 없는 것이다. 스기타 미오는 아베 신조 총리를 향해 당신은 생산성이 없다고 직접 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스기타 미오는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 사는 몸이면서도 정치적인 목표가 차별 밖에 없는 비생산적인 국회의원이다."라고 비판했다.[92] LGBT에 대해서는 "동성애는 취미의 문제가 아니라 선천적인 뇌의 문제이며 본인의 의식으로는 어쩔 수 없다.", "생물학적으로는 전혀 어쩔 수 없는 선천적인 뇌 안의 문제이며 그것을 차별하거나 편견을 갖거나 그 사람들이 보통적으로 품는 감정을 부도덕하다고 말할 수 없다.", "LGBT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은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93]
  • 고바야시는 1930년대 말기와 태평양 전쟁 시기에 국민학교에 재학한 학생으로서 군국주의 교육을 받았던 세대를 "소국민 세대"라고 부른다.[94]
  • 고바야시는 영혼, 초능력, 미확인비행체와 같은 오컬트에 대해 "자신의 눈으로 본 것 밖에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하기 보다는 과학을 사용해서 이론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해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쓰키 요시히코의 팬이라고 밝혔지만,[95] "오쓰키 교수도 회답을 내지 않은 것이 결점이다."라고 말했다.
  • 고바야시는 《고마니즘 선언 시바라쿠 1》에서 일본의 만화 산업 시스템을 파괴한다고 북오프를 비판했다.
  • 나카자와 신이치와 강연 도중 사카모토 쓰쓰미 변호사 일가족 살해 사건에 대해 창가학회를 비롯한 종교 단체 조사 결과 옴진리교의 소행이 아니라고 발언한 나카자와에게, 고바야시는 "거짓말이 확실하다."고 말했다.[96]
  • 고바야시는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 도입과 관련하여 "사실혼이야말로 일본의 전통이다."라면서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97] "결혼 이전의 "성씨"가 편하면 통칭을 사용하면 된다."라고도 말했다.[98]
  • 고바야시는 '야마오 시오리를 수상으로 하는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다고 자처했다. 야마오 시오리가 불륜 의혹으로 민진당을 탈당한 후, 민진당을 비판하고 야마오 시오리의 탈당 기자 회견을 높이 평가했다.[99]

5. 작품 목록

고바야시 요시노리는 만화가이자 저술가로, 다양한 분야에서 작품을 발표했다.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 만화:
  • 東大一直線|도다이 이초쿠센|도쿄대학 직행일본어 (1976)
  • おぼっちゃまくん|오보っちゃ마쿤|작은 왕자님일본어 (1986)
  • 왕괴짜 돈만이
  • 도쿄 대학 일직선
  • 이로하니 호사쿠

  • 고마니즘 선언 시리즈:
  • 고마니즘 선언 1~9권
  • ''고마니즘 선언 엑스트라 1''
  • ''고-가이!'' (ゴー外|고 가이|고마니즘 보충/외전jp)
  • ゴーマニズム宣言差別論スペシャル|고마니즘 선언 차별론 스페셜|차별에 관하여jp (1995)
  • ''신 고마니즘 선언'' 1~14권
  • 新・ゴーマニズム宣言SPECIAL 脱正義論|신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 탈정의론|정의에서 벗어남에 관하여jp (1996)
  • 신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 전쟁론 1~3권 (1998)
  • 新・ゴーマニズム宣言SPECIAL 「個と公」論|신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 "개인과 공공"론|"개인"과 "공공"에 관하여jp (2000)
  • 신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 타이완론 (2000)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 요시린 전기 (2003)
  • Shin Gōmanism Sengen Special - Okinawa Ron|신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 오키나와론|오키나와에 관하여jp (2005)
  • 新・ゴーマニズム宣言SPECIAL 靖國論|신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야스쿠니론|야스쿠니 신사에 관하여jp (2005)
  • 신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 도전적인 평화론, 1~2권
  • 소위 A급 전범 - 고선 스페셜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천황론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대동아론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AKB48론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코로나론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우크라이나 전쟁론

  • 기타 저서:
  • 本日の雑談|혼지쓰노 자쓰단|오늘의 잡담jp
  • 고마니즘 선언 차별론 스페셜
  • 신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탈정의론
  • 신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전쟁론
  • 신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대만론
  • 신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오키나와론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진주만 진실론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천황론 추격편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쇼와 천황론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국방론
  • 여성 천황의 시대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신 전쟁론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민주주의라는 병
  • 고마니즘 선언 외전 「여자에 관하여」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신 타락론

  • 공저 및 편저:
  • 『지식의 하르마게돈―고선・사린・퍼플린』 (1995)
  • 『고마니즘 사상 강좌 정의・전쟁・국가론』 (1997)
  • 『역사 교과서와의 15년 전쟁』 (1997)
  • 『아사히 신문의 정의』 (1997)
  • 『전쟁 논쟁전』 (1999)
  • 『국가와 전쟁―철저 토의』 (1999)
  • 『입국 거부―『대만론』은 왜 불태워졌는가』 (2001)
  • 『애국 대론』 (2002)
  • 『반미라는 작법』 (2002)
  • 『신고마니즘 선언 SPECIAL 개와 공론』
  • 『일본인이라면 알아두어야 할 야스쿠니 문제』 (2007)
  • 『자랑스러운 오키나와로』 (2008)
  • 『일본을 깎아내린 10인의 매국 정치가』 (2009)
  • 『희망의 나라・일본 아홉 명의 정치가와 진검 승부』 (2010)
  • 『신일본인에게 묻겠다! ―고마니즘 대론집』 (2011)
  • 『처음으로 배우는 지나론 중화 사상의 정체와 일본의 각오』 (2011)
  • AKB48 열전 논쟁 (2012)
  • 『나쇼널리즘의 현재』 (2014)
  • 『전쟁하는 나라의 도덕 안보・오키나와・후쿠시마』 (2015)
  • 『고독을 관철하라』 (2016)
  • 『더 논쟁! ~「리베럴 VS 보수」궁극 대결』 (2016)
  • 『일본인이라면 알아두어야 할 천황론』 (2017)
  • 『고선 〈헌법〉 도장 ①백대』 (2018)
  • 『고선 〈헌법〉 도장 ②흑대』 (2018)
  • 『천황론 『일미 격돌』』 (2019)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전문가를 추궁하다』 (2020)
  • 『코로나 뇌 일본인은 데마에 죽는다』 (2021)
  • 『코로나와 백신의 전모』 (2021)
  • 『통일교 문제의 어둠 국가를 좀먹고 있던 카르트의 정체』 (2023)


이 외에도 다수의 작품이 있다.

5. 1. 만화

고바야시 요시노리는 1976년부터 1979년까지 《주간 소년 점프》에 《도쿄 대학 일직선》(東大一直線일본어)을 연재하며 데뷔했고, 1980년부터 1981년까지 《주간 영 점프》에 후속편 《도쿄 대학 쾌진격》(東大快進撃일본어)을 연재했다.[77] 데즈카 오사무의 스타 시스템을 일시적으로 사용했으며, 1983년 《주간 영 점프》에 《겁쟁이 호사쿠전》(布抜呆作伝일본어)을 게재했다.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주간 소년 챔피언》에 《이로하니 호사쿠》(いろはにほう作일본어)를 연재했다.

1986년 5월부터 1994년 9월까지 《월간 코로코로 코믹》에 《왕괴짜 돈만이》(おぼっちゃまくん일본어)를 연재했는데, 이 작품은 1989년 쇼가쿠칸 만화상 아동 부문을 수상했다.[21] 1992년부터 1993년까지 《월간 코로코로 코믹》에 《시골왕 초사쿠》(田舎王超作일본어)를 연재했다.

고바야시 요시노리의 주요 만화 작품은 다음과 같다.

제목연재 잡지연재 기간
도쿄 대학 일직선 (東大一直線일본어)주간 소년 점프1976년-1979년
도쿄 대학 쾌진격 (東大快進撃일본어)주간 영 점프1980년-1981년
겁쟁이 호사쿠전 (布抜呆作伝일본어)주간 영 점프1983년
이로하니 호사쿠 (いろはにほう作일본어)주간 소년 챔피언1984년-1986년
왕괴짜 돈만이 (おぼっちゃまくん일본어)월간 코로코로 코믹1986년-1994년
시골왕 초사쿠 (田舎王超作일본어)월간 코로코로 코믹1992년-1993년


5. 2. 기타 저서


  • 東大一直線|도다이 이초쿠센|도쿄대학 직행jp (1976)
  • おぼっちゃまくん|오보っちゃ마쿤|작은 왕자님jp (1986)
  • 고마니즘 선언, 1~9권
  • * ''고마니즘 선언 엑스트라 1''
  • * ''고-가이!'' (ゴー外|고 가이|고마니즘 보충/외전jp)
  • * ゴーマニズム宣言差別論スペシャル|고마니즘 선언 차별론 스페셜|차별에 관하여jp (1995)
  • * ''신 고마니즘 선언'', 1~14권
  • * 新・ゴーマニズム宣言SPECIAL 脱正義論|신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 탈정의론|정의에서 벗어남에 관하여jp (1996)
  • * 신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 전쟁론 1~3권 (1998)
  • * 차별론 스페셜 - 고마니즘 선언 (1998)
  • * 新・ゴーマニズム宣言SPECIAL 「個と公」論|신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 "개인과 공공"론|"개인"과 "공공"에 관하여jp (2000)
  • * 신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 타이완론 (2000)
  •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 요시린 전기 (2003)
  • * Shin Gōmanism Sengen Special - Okinawa Ron|신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 오키나와론|오키나와에 관하여jp (2005)
  • * 新・ゴーマニズム宣言SPECIAL 靖國論|신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야스쿠니론|야스쿠니 신사에 관하여jp (2005)
  • * 신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 도전적인 평화론, 1~2권
  • * 소위 A급 전범 - 고선 스페셜
  • 本日の雑談|혼지쓰노 자쓰단|오늘의 잡담jp
  • 나무의 바다
  • 고마니즘 선언 차별론 스페셜
  • 신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탈정의론
  • 신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전쟁론
  • 신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개와 공」론
  • 신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대만론
  • 신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오키나와론
  • 신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야스쿠니 신사론
  • 눈알 일기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진주만 진실론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요시린 전기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천황론
  •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천황론 추격편
  •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천황론 2017년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쇼와 천황론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신 천황론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국방론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반 TPP론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대동아론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탈원전론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AKB48론
  • 고마니즘 선언 라이징 가짜 정치인 식별법
  • 고마니즘 선언 라이징 개전 전야
  • 여성 천황의 시대
  • 보수도 모르는 야스쿠니 신사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신 전쟁론
  • 9조는 전쟁 조항이 되었다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민주주의라는 병
  • 고마니즘 전쟁사
  • 고마니즘 선언 외전 「여자에 관하여」
  • 훌륭하도다, 상식!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신 타락론
  • 위안부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코로나론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우크라이나 전쟁론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아이코 천황론
  • 요시린 이야기책
  • 원전은 위험하다, 핵무기는 안전하다
  •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일본인론
  • 『지식의 하르마게돈―고선・사린・퍼플린』 고바야시 요시노리, 아사바 미치아키 (1995년)
  • 『고마니즘 사상 강좌 정의・전쟁・국가론―자신과 사회를 잇는 회로』 타케다 아오쓰구, 하시즈메 다이사부로, 고바야시 요시노리 (1997년)
  • 『교과서가 가르칠 수 없는 자학』 고바야시 요시노리, 타케우치 요시카즈, 일본의 전쟁 冤罪 연구센터 (1997년)
  • 『역사 교과서와의 15년 전쟁―「침략・진출」부터 「위안부」 문제까지』 니시오 칸지, 후지오카 신쇼, 고바야시 요시노리, 타카하시 시로 (1997년)
  • 『아사히 신문의 정의―역설의 신고마니즘 선언』 고바야시 요시노리, 이자와 모토히코 (1997년)
  • 『지식의 하르마게돈』 고바야시 요시노리, 아사바 미치아키 (1998년)
  •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라는 운동이 있다』 고바야시 요시노리,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1999년)
  • 『전쟁 논쟁전―고바야시 요시노리 VS. 타하라 소이치로』 고바야시 요시노리, 타하라 소이치로 (1999년)
  • 『아이는 기다리고 있다! 부모의 차례』 김미령, 타카하시 시로, 고바야시 요시노리, 나미카와 에이타 (1999년)
  • 『국가와 전쟁―철저 토의』 고바야시 요시노리, 세이부 스스무, 사에키 케이시, 후쿠다 카즈야 (1999년)
  • 『자학입니다.』 고바야시 요시노리, 타케우치 요시카즈, 일본의 전쟁 冤罪 연구센터 (1999년)
  • *『교과서가 가르칠 수 없는 자학』 개제판.
  • 『입국 거부―『대만론』은 왜 불태워졌는가』 고바야시 요시노리, 김미령 (2001년)
  • 『이덩휘 학교의 가르침』 이덩휘, 고바야시 요시노리 (2001년)
  • 『애국 대론』 와타나베 쇼이치, 고바야시 요시노리 (2002년)
  • 『반미라는 작법』 세이부 스스무, 고바야시 요시노리 (2002년)
  • 『어리석은 허리 빠진 병의 친미 보수』 고바야시 요시노리, 세이부 스스무 (2003년)
  • 『신고마니즘 선언 SPECIAL 개와 공론』
  • 『일본인이라면 알아두어야 할 야스쿠니 문제』 고바야시 요시노리, 타카모리 아키쵸쿠, 오하라 야스오, 코보리 케이이치로, 나카니시 테루마사, 니시오 칸지, 햐쿠지 쇼, 하세가와 미치코 (2007년 6월)
  • 『자랑스러운 오키나와로』 기획・편저:고바야시 요시노리, 저:미야기 요시히코, 타카사토 요우스케, 토이타 요시유키 (2008년 6월)
  • 『일본인이여, 더 악인이 되어라』 우에사카 후유코, 고바야시 요시노리 (2009년 6월)
  • 『일본을 깎아내린 10인의 매국 정치가』 고바야시 요시노리 편, 소에지마 타카히코, 오하라 야스오, 타쿠보 타다에, 호리베 마사후미, 니시오 칸지, 세키오카 히데유키, 우시오 마사토, 후루야노 아츠시, 카츠야 세이히코, 키무라 미츠히로, 미야기 요시히코, 하세가와 미치코, 타카모리 아키쵸쿠, 미야다이 신지, 타카야마 마사유키, 야기 슈지, 토미오카 코이치로, 고리타 요시이에, 니시무라 코우스케 (2009년 7월)
  • 『희망의 나라・일본 아홉 명의 정치가와 진검 승부』 고바야시 요시노리 (2010년 4월 28일)
  • 『국민의 유서 「울지 말고 칭찬해 주세요」 야스쿠니의 언엽 100선』 고바야시 요시노리 책임 편집 (2010년 7월 16일)
  • 『신일본인에게 묻겠다! ―고마니즘 대론집』 고바야시 요시노리, 이시헤이, 오 젠화, 정대균, 페마 걀포, 빌 토튼, 김미령 (2011년 5월)
  • *일본에 귀화한 친일 출신 외국인들과의 대담집.
  • 『처음으로 배우는 지나론 중화 사상의 정체와 일본의 각오』 고바야시 요시노리, 아리모토 카오리 (2011년 7월 27일)
  • 『나와 종교』 와타나베 나오키 편, 타카무라 카오루, 고바야시 요시노리, 오가와 요코, 타치바나 타카시, 아라키 케이이, 타카하시 케이코, 류손 진, 호소에 히데키, 소우다 카즈히로, 미즈키 시게루 (2011년 10월)
  • AKB48 열전 논쟁 고바야시 요시노리, 우노 조칸, 나카모리 아키오, 하마노 사토시 (2012년 8월 27일)
  • 『나쇼널리즘의 현재―〈네토우요〉화하는 일본과 동아시아의 미래』 우노 조칸, 카야노 토시토, 고바야시 요시노리, 박순리, 요나하 준 (2014년 12월 12일)
  • 『전쟁하는 나라의 도덕 안보・오키나와・후쿠시마』 고바야시 요시노리, 미야다이 신지, 히가시 히로키 (2015년 10월 15일)
  • 『고독을 관철하라』 고바야시 요시노리, 시미즈 카츠에이 (2016년 5월 15일)
  • 『더 논쟁! ~「리베럴 VS 보수」궁극 대결~』 고바야시 요시노리, 이노우에 다츠오 (2016년 11월 11일)
  • 『일본인이라면 알아두어야 할 천황론』 고바야시 요시노리, 타하라 소이치로 (2017년 10월)
  • 『고선 〈헌법〉 도장 ①백대』 고바야시 요시노리, 이노우에 다츠오, 야마오 시사토, 코마무라 케이고, 소가베 마사히로 (2018년 4월)
  • 『고선 〈헌법〉 도장 ②흑대』 고바야시 요시노리, 이노우에 다츠오, 야마오 시사토, 에다노 유키오, 이세자키 켄지, 야마모토 하지메, 이노우에 타케시 (2018년 10월)
  • 『천황론 『일미 격돌』』 고바야시 요시노리, 케네스 루오프 (2019년 10월)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전문가를 추궁하다』 고바야시 요시노리, 이즈미 미키란 (2020년 11월)
  • 『코로나 뇌 일본인은 데마에 죽는다』 고바야시 요시노리, 미야자와 타카유키 (2021년 4월)
  • 『코로나와 백신의 전모』 고바야시 요시노리, 이노우에 마사야스 (2021년 9월)
  • 『통일교 문제의 어둠 국가를 좀먹고 있던 카르트의 정체』 고바야시 요시노리, 아리타 요시오 (2023년 3월)
  • 오지 에이 편 『고마니즘이란 무엇인가! 고바야시 요시노리론 서설…』 (1995년)
  • 『고-선 레터집 고마니스트 대파티』 기간 3권 (1996년 - 1997년)

6. 사생활

고바야시 요시노리는 일본의 아이돌 걸 그룹인 AKB48의 열렬한 팬이다.[102] 2016년 5월 1일에는 자신의 블로그에 "나는 더 이상 오타쿠가 아니다"라는 글을 통해 "오타쿠 졸업"을 했다고 선언했다.[103] 자신이 선호하는 멤버로는 AKB48의 오시마 유코, 이치카와 미오리, 와타나베 마유, NMB48와타나베 미유키, HKT48무라시게 안나라고 밝혔다. 또한 HKT48의 멤버인 사시하라 리노의 안티 팬임을 밝히면서 향후에는 자신의 블로그에 NMB48을 응원하겠다고 선언했다. 한때는 《고마니즘 선언》에서 아키모토 야스시를 비판했다가 입장을 바꾸기도 했다.

고바야시 요시노리는 프로레슬링을 취미로 삼았는데 마감 이전에 일을 서둘러서 마무리하고 관람할 시간을 낼 정도였다.[104] 고바야시 요시노리는 폭력에 대한 동경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는데 그의 작품이나 개그에도 프로레슬링과 격투기를 모티브로 한 내용이 많았다. 또한 《고마니즘 선언》을 통해 장애인 프로레슬링을 세상에 알리면서 장애인 프로레슬링에서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역대 비서에 따르면, "결벽증 수준의 청결을 좋아한다". 자택 이외의 화장실에는 가고 싶지 않아서 외출 시 수분 섭취를 극도로 피했던 시기도 있었다(현재는 의사에게 수분 부족을 지적받고 적극적으로 섭취하고 있다). 또한, 바스타월이 깔린 의자(일명 "타월 의자")를 애용하고 있다.

2005년 가을에 백내장으로 시력이 현저히 나빠져 수술을 받고 『신 고우센』을 휴재했다. 구 『고우센』시절, 『소문의 진상』 기사가 계기가 되어 당시 비서였던 스에나가 나오미가 퇴사한 충격으로 원고를 떨어뜨린 이후의 휴재였다. 시력은 회복되었지만, "안압이 너무 강하다"는 이유로 다음 주에도 휴재했다.

생활 주기는 "이틀 동안 깨어 있고 6시간 잔다"고 『오보차마 군』시절 조수가 말했고, 본인도 오랫동안 야행성이라고 말했지만, 시력 회복 수술을 받은 후에는 조행성으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펜과 같은 가늘고 긴 것을 잡을 때 보통은 집게손가락과 가운데손가락 사이에 끼지만, 고바야시는 집게손가락과 엄지손가락 사이에 낀다. 이 때문에 집게손가락과 엄지손가락 사이에 굳은살이 여섯 개나 있으며 "일본에서 굳은살이 가장 많은 만화가"라고 자칭한다. 독특한 굳은살은 자신을 모델로 한 만화가 고바야시 야샤리가 주인공인 『야차』에도 등장한 적이 있다.

천식은 "대학교 시절 약간 재발했지만 언제부턴가 낫고, 만화가 데뷔하니 다른 사람보다 강해졌다"고 하지만, 2006년 1월에 사망한 우체국 직원인 아버지가 수년 전부터 다시 천식을 앓게 된 것을 보고 "나이 들면 재발할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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